태블릿+노트북? 슬레이트 PC 살까?

이호수 0 2,457 2011.12.22 15:55
태블릿+노트북? 슬레이트 PC 살까? 겉모습은 태블릿, 성능은 일반 노트북
하드웨어 스펙 훌륭하지만 체감성능 떨어져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윌터 아이작슨 저)에서 아이패드의 개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잡스는 지인의 가족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엔지니어의 초대를 받았다. 그는 잡스에게 당시 MS가 개발하던 태블릿에 대해 얘기하며 자랑했다. 짜증이 난 잡스는 집에 돌아와 결심했다고 한다. “웃기는군. 진짜 태블릿이 뭔가를 보여 주지.” 이 부분에서 잡스는 MS의 태블릿에 오류가 있다고 언급했다. 바로 스타일러스(터치펜)이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것을 선호하는 잡스는 다른 어떤 입력장치 없이 맨손으로 다룰 수 있는 태블릿을 원했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아이패드가 됐다.

그리고 MS는 이와 달리 스타일러스를 사용한 태블릿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아 왔다. 이 와중에 태블릿과 유사한 UMPC, MID 등 다양한 규격을 선보였지만 성능이 떨어지고 값도 비싸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외면당한다. 그리고 2001년 MS의 빌 게이츠가 태블릿을 처음 소개한 지 10년 만에야 가장 초기 의도에 근접한 태블릿이 나왔다. 삼성전자의 슬레이트 P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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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 PC는 윈도 7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PC와 똑같이 사용할 수 있으며, 당연히 워드, 엑셀 등 PC에서 쓰던 프로그램 및 데이터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서 성능도 뛰어나다. 최신 PC처럼 인텔 2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해 기존 태블릿과 달리 속시원하게 빠르다.

가격도 ‘기존 태블릿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슬레이트 PC의 출시가격은 179만 원이지만 시중에서는 150만 원 전후로 구매할 수 있다. 슬레이트 PC의 가격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기존 태블릿 중 이 정도 성능을 갖춘 제품은 무조건 200만 원이 넘었다. 정확히는 그마저도 일반 PC의 성능에 한참 못 미쳤다. 당시 기술로는 한계였기 때문. 하지만 슬레이트 PC는 게임을 제외한 용도에서는 일반 PC에 근접한 성능을 발휘할 정도다.

게다가 스타일러스 전문 회사인 와콤의 디지타이저 펜을 적용했다. 와콤의 제품은 신뢰성이 뛰어나 미술과 디자인 관련 직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비로 유명하다. 이 중 화면 위에 직접 스타일러스로 입력하는 제품인 신티크는 인터넷 최저가로 구해도 130만 원대. 이를 감안하면 슬레이트 PC가 절대 비싸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슬레이트 PC는 기존 태블릿과 달리 사용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제품이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슬레이트 PC는 현재 PC의 성능을 가장 얇고 가볍게 축소했다는 점에서 분명 훌륭하지만 사용자에게 이상적인 제품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특히 그 중 상당수의 문제가 운영체제인 MS의 윈도 7에서 비롯된다. 태블릿이라는 규격을 제시한 회사가 정작 태블릿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용자가 예상하는 것과 달리 태블릿을 들고 다니며 편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윈도 7은 특정 화면에 많은 기능을 눌러 담다 보니 메뉴와 아이콘이 작다. 키보드와 마우스로 입력할 때는 쓸만하지만 태블릿을 들고 다니며 손가락이나 스타일러스로 입력하기 힘들다.

슬레이트 PC를 손에 들고 바탕 화면의 아이콘과 웹 브라우저의 메뉴를 조작하려 했으나 너무 작아 정확히 터치하기가 힘들었다. 스타일러스를 사용하면 한결 낫지만 이 또한 적응하지 않으면 어색하고 번거롭다. 특히 들고 이동하며 쓸 때는 스타일러스로도 정확히 터치하기가 힘들다. 삼성도 이를 의식했는지 터치에 맞게 아이콘을 키운 테마 화면을 넣었지만 전체 기능을 사용하는 데는 못 미치는 수준. 아이패드나 갤럭시 탭 같은 태블릿이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그 다음 문제는 성능과 안정성이다. 윈도 7은 많은 사용자에게 가장 친숙한 운영체제지만 다른 운영체제보다 무겁고 안정성이 떨어진다. 슬레이트 PC의 하드웨어 성능이 뛰어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사용하다 보면 발열이 심해진다. 삼성은 사용 도중 발생하는 열을 낮추기 위해 하드웨어 성능이 저절로 떨어지도록 설정했다가 사용자들에게 항의를 받고 공식 해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배터리를 많이 잡아먹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안정성 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시스템 점유율이 높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윈도 7의 기본 프로그램 중에도 이런 것이 있다. 기자의 경우 다른 프로그램을 모두 끈 상태에서 윈도 7에 기본 내장된 미디어 플레이어를 열다가 블루 스크린을 보기도 했다. 태블릿에 블루 스크린이라니, 어떤 면에서는 윈도답다고 해야 할까? 인터넷에서 ‘슬레이트 블루 스크린’으로 검색해 보니 의외로 유사한 사례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제조사인 삼성의 실책도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사용자들을 통해 슬레이트 PC를 포맷하고 재설치할 때 필요한 복구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 복구 데이터는 운영체제를 포함하여 팔리는 PC라면 무조건 DVD나 하드디스크에 내장되어 나온다. 하지만 슬레이트 PC는 광학 드라이브가 없는 데다 하드디스크보다 용량이 낮은 SSD를 사용하기 때문에 복구 데이터를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 같은 사정인 애플의 맥북이나 맥 미니의 경우 USB 메모리에 복구 데이터를 넣어서 주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사용자들은 애플의 예를 들며 삼성 또한 복구 데이터를 넣은 USB 메모리 같은 대안을 제공하길 원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별도의 복원 CD가 제공되지 않으나 필요하다면 쇼핑몰에서 구입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했다. 완제품 PC의 경우 구매 가격 자체가 내장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포함한 가격이기 때문에 이러한 답변은 결국 이미 구매한 소프트웨어를 한 번 더 사라는 것과 마찬가지. 사용자 입장에서 황당할 수밖에 없다.

슬레이트 PC가 출시된 지 꽤 지났지만 가격은 여전히 논란 대상이다. 슬레이트 PC의 사용기나 관련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이따금 “슬레이트 PC 한 대 살 돈이면 노트북과 다른 태블릿을 살 수 있다.”는 주제의 글을 볼 수 있다. 슬레이트 PC의 하드웨어 제원을 고려하면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인 듯. 제조사 입장에서 가격 인하가 어렵다면 통신사와 제휴하여 와이브로 패키지와 같은 우회적인 할인 수단을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된다.

이처럼 슬레이트 PC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운영체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점 때문에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단순히 휴대하기 좋고 어디서나 윈도 운영체제를 쓸 수 있는 제품을 찾는다면 슬레이트 PC는 좋은 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태블릿에 다소 못 미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격에 대해서도 좀 더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격대나 판매 정책이 필요하다. 제품이 좋은 것을 떠나 그 활용도와 가격은 소비자의 선택에 달렸기 때문이다.

정택민PD
xa1122@chosun.com
입력 : 2011.12.2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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